먹의 세계
단순함이란 그림으로 치면
수묵화의 경지이다
먹으로 그린 수묵화.
이 빛깔 저 빛깔 다 써보다가
마지막에 가서는 먹으로 하지 않는가.
그 먹은 한 가지 빛이 아니다.
그 속에는 모든 빛이 다 갖춰져 있다.
또 다른 명상적인 표현으로 말하면
그것은 침묵의 세계이다.
텅 빈 공의 세계이다.
-법정 잠언집 '살아 있는 것은 다 행복하라'중에서-
인간의 배경
인간은 누구나
숲이나 나무 그늘에 들면
착해지려고 한다.
콘크리트 벽 속이나
아스팔트 위에서는
곧잘 하던 거짓말도
선하디 선하게 서 있는
나무 아래서는 차마 할 수가 없다.
차분해진 목소리로
영원한 기쁨을 이야기하고
무엇이 선이고 진리인가를
헤아리게 된다.
소음의 틈바구니에서
분주히 뛰어다니고 있는
일상의 자신이 훤히 드러나 보인다.
인간의 배경은
소음과 먼지에 싸여 피곤하기만 한
도시의 문명일 수 없다
나무와 새와 물과 구름,
그리고 별들이 수 놓인 의연한 자연임을 알 수 있다.
사람은 자연으로부터 그 질서와
겸허와 미덕을 배워야 한다.
-법정 잠언집 '살아 있는 것은 다 행복하라'중에서
창을 바르며
어제는 창을 발랐다
바람기 없는 날 혼자서
창을 바르고 있으면
내 마음은 티 하나 없이 맑고 투명하다.
무심의 경지가 어떻다는 것을 실감할 수 있다.
새로 바른 창에 맑은 햇살이 비치니
방 안이 한결 정갈하게 보인다.
가을날 오후의 한때,
빈 방에 홀로 앉아
새로 바른 창호에 비치는
맑고 포른한 햇살을 보고 있으면
내 마음은 말할 수 없이 아주 넉넉하다
이런 맑고 투명한 삶의 여백으로 인해 나는
새삼스레 행복해지려고 한다.
-법정 잠언집 '살아 있는 것은 다 행복하다'중에서-
도반
진정한 도반은
내 영혼의 얼굴이다
내 마음의 소망이 응답한 것
도반을 위해 나직이 기도할 때
두 영혼은 하나가 된다
맑고 투명하게
서로 비추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 도반 사이에는 말이 없어도
모든 생각과 소원과 기대가
소리 없는 기쁨으로 교류된다
이때 비로소 눈과 마음은
시간과 공간을 넘어 하나가 된다.
강물처럼 흐르는 존재
인간은 강물처럼 흐르는 존재이다.
우리는 지금 이렇게 이 자리에 앉아 있지만
순간마다 끊임없이 흘러가고 있다
늘 변하고 있다는 것이다.
날마다 똑 같은 사랑일 수 가 없다
그렇기 때문에 함부로 남을 판단 할 수 없고
심판할 수가 없다
우리가 누군가에 대해
비난을 하고 판단을 한다는 것은
한달 전이다 두 달 전 또는 몇 년 전의 낡은 자로써
현재의 그 사람을 재려고 하는 것과 같다
그 사람의 내부에서 어떤 변화가 일어나는 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렇기 때문에 타인에 대한 비난은
늘 잘못된 것이기 일쑤다
우리가 어떤 판단을 내렸을 때
그는 이미 딴사람이 되어 있을 수 있다
말로 비난하는 버릇을 버려야 한다
우리 안에서 사랑의 능력이 자란다
이 사랑의 능력을 통해
생명과 행복의 싹이 움튼다.
외로움
혼자 사는 사람들만
외로움을 느끼는 것은 아니다
세상 사람 누구나
자기 그림자를 이끌고 살아가고 있으며
자기 그림자를 되돌아보면
다 외롭기 마련이다
외로움을 느끼지 못한다면
그는 무딘 사람이다
너무 외로움에 젖어 있어도 문제지만
때로는 옆구리께 스쳐 가는
마른 바람 같은 것을 통해서
자기 정화,자기 삶을
밝힐 수가 있다.
따라서 가끔은 시장기 같은
외로움을 느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