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umam Review
행동하는 관상가,토마스 머튼
Tomas Merton,1915-1968
한때 등졌던 세상에서 활동하시는 하느님을 발견한 사람,토마스 머튼은 1915년 1월 31일 프랑스 프라드에서 태어났다.
이후 그는 미국,프랑스,영국을 돌아다니며 교육을 받았다. 그의 부모는 화가였는데,아버지는 뉴질랜드 태생 영국인이었고 어머니는 미국 태생이었다.
머튼의 어머니는 그가 여섯살 때 세상을 떠났고,아버지는 열여섯 살 때 세상을 떠났다.
그는 유아세례를 받았지만 특정 교회에 소속되어 정규 신앙교욱을 받지는 않았다. 러클랜드에 있는 오캄 사립 기숙학교에 다니며 잉글랜드 성공회를 접했을 뿐이다. 조부모가 살고 있는 미국으로 이주하면서,뉴욕의 콜럼비아대학을 다니면서 1939년 가톨릭교회에서 세례를 받고,1941년 곧바로 켄터키 겟세마니 수도원에 들어갔다. 이곳은 규율이 매우 엄격한 시토회인 '트라피스트 수도회였다.
머튼은 폭력적인 세상에서 단절하는 길을 세상을 떠나 가난과 침묵 속에서 기도하는 삶이라고 믿었다. 수도원장의 요구로 1948년에 저서전,칠층산>을 썼는데,이 책이 세계적인 반향을 이르켜 첫해에만 60만 부가 팔렸다. <칠층산>에서 머튼은 쾌락을 추구하는 현대사회를 비판하며"그건 진짜 행복이 아냐!"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그 뒤 다양한 주제의 책을 집필했는데, <일기인,요나의 표징>, 신학에세이<진리의 산길>,동양 영성에 대한 연구인 <선과 맹금>,전쟁과 사회문제를 다룬 <파괴의 씨>,그리고 묵상서인<새 명상의 씨>등이 있다.
수도원은 세상의 도피처가 아니다
초기에 쓴 머튼의 글은 이 세상에 대해 경멸적이고 부정적인 태도를 보이다가,나중에는 세상에 대한 연민으로 기울었다.
그는 점차 수도원 밖 세상과 다른 영적 전통에 열린 태도를 보이기 시작했다.
"수도원은 세상으로부터의 도피처가 아니다.수도원에 있음으로써
나는 세상에서 이루어지는 모든 투쟁과 고난에 진실로 참여한다."
이러한 태도의 변화는 1958년 3월 18일 그가 체험한 비전에 뿌리를 둔다. 그는 수도원에서 가까운 도시 루이빌에 여행하다가 4번가와 월넛 스트리크가 만나는 모퉁이에서 군중을 바라보았다.
"상가 중심에서 나는 감격하여 어찌할 바를 몰랐다. 나는 거리를 오가는 이 사람들을 사랑했다. 그들은 나의 것이고 나는 그들의 것이었다. 비록 서로 낯선 사람들이지만,서로 이질적인 사람일 수 없음을 깨달았다.(수도원은)모든 것을 단념하는 세계이자 거룩한 곳이라는 거짓된 자기 고립의 꿈에서 깨어났다.
세상과 격리된 삶을 사는 거룩한 존재라는 꿈은 모두 망상이다. ..
'수도원은 세상으로부터 격리되어 있다'고 믿는 순진한 망상을 나는 16-17년 동안 진지하게 받아들였다. ..
그러나 인류의 구성원이 된다는 것은 영예로운 운명이다. 나는 내가 인간인 것에 대해,하느님께서 몸소 성육신하신 인류의 구성원이라는 사실에 대해 헤아릴 수 없는 기쁨을 느꼈다."
토머스 머튼은 이후 사회문제에 주의를 돌리기 시작한다. 세상을 향한 예언자적 소명에서 수도자라고 예외가 되어 벗어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예언은 선택사항이 아니라 필수사항이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은 "참된 예언자가 되어 번민할지"'거짓 예언자가 되어 이사회에 넘쳐나는 유혹을 받아들이고 그 안에서 편안함을 찾고 썩은 고기를 즐길지"선택해야 한다고 말한다.
머튼은 "건강한 교회는 세상에서 하느님의 현존을 선포하고 알리는 '예고'와 정의롭지 못한 것을 분별하고 거짓에 저항하는 '경고'를 한 데 모아 예언하는 공동체'라고 생각했다. 즉,교회는 세상을 거부하는 것과 세상을 받아들이는 것 사이에서 일어나는 변증법을 만들어가는 공동체라는 것이다.
수도자의 임무는
환상의 가면을 흔들어 벗기는 것
토머스 머튼은 1961년 나치 장교이자 호로코스트 전범이었던 아돌프 아이히만이 재판을 받으면서 어떤 불안도 양심의 후회도 없는 모습을 보고서 큰 충격을 받았다.
"아이히만과 무수히 많은 다른 유대인 학살범을 포로수용소에서 저지른 자신들의 행동을 당연하게 여겼다. 그들은 자신들이 한 일에 대해 충격을 받지도,놀라지도 않았고 일말의 후회도 하지 않았다.아이히만은 마지막까지 자신이 하느님을 두려워하는 인간이며 하느님께 순종한다고 말했다.
머튼은 '악의 평범성'을 여기서 본 것이다. 그릇된 신념은 그릇된 행동을 낳는다.누군가 가톨릭 신자가 된다고 해서 "갑작스럽게 빛을 쪼아 모든 어둠을 영원히 없애버리는 것처럼" 복음의 진리를 살지 않는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을 반대하는 태극기 집회에 나섰던 '대한민국수호천주교인모임'의 멤버들처럼,그들은 하느님과 신앙의 이름으로,애국심으로 포장된 '그들 나름의 진정성'에 아무런 의심이 없다. 헌법재판소에서 진지하고 심각하게 기도하던 서석구 변화사와 아이히만은 다를 게 없다. 우상을 하느님이라고 믿어버리는 순간,평범한 신자가'선교'의 이름으로 우상숭배를 전파는 잘못은 피할 수 없다. 이것은 명백히 선해 보이는 의도 안에 숨겨진 망상이다.
그래서 토머스 머튼은 교외의 임무를 "깊은 층위에서 사람들을 뒤흔들어 '비진리'와 '망상'에서 그들을 돌이키는 것"이라고 했다. 환상의 가면을 벗기고 사람들이 진실을 마주보게 하는 것이다.
행동'주의'와 관상'주의'를 경계함
트라피스트 수도원의 창립자인 클레르보의 베르나르도는 "매일 매일 더 영적으로 진보하고 싶다면,사랑 안에서 마지막 날까지 인내해야 한다"고 했다.
사랑의 길은 하느님을 향한 갈망과 이웃을 향한 연민을 하나로 묶는다.이런 점에서 토머스 머튼은 관상과 실천(행동)의 통합을 제안한다.
"관상은 새로운 세계를 자기 스스로 건설할 수 없다. '그러나'관상을 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이 세계에서 행동해야 할 중요한 이유를 발견하지 못한다. '그리고' 관상을 하지 않는다면,하느님과의 친밀감을 잃어버린다면,침묵이 없다면,사랑을 통해 은밀하게 진리를 추구하지 않는다면,우리의 행동은 세상에서 그 목적을 잃으며 위험해진다."
행동하지 않는 사랑은 '관념적 사랑'이다. 기도와 생각만으로 하느님 나라는 오지 않는다. 그러나 "산다는 것은 일을 처리하는 것'이라고 믿는 행동주의를 지나치게 강조하는 것은 위험하다.'침묵 안에서 듣는'관상이 없으면,실용주의와 눈에 보이는 결과만을 숭배하게 된다.
사랑하기 위해 자유롭게 되라
1938년 죽은 러시아 수도자,스타레츠 실루안은 "너의 영혼이 지옥에 있을지라도 절망하지 말라."고 했다. 무슨 일을 하더라도 결과에 초연한 태도가 필요하다는 뜻이다. 역경을 마주칠 때 선승처럼 흐미한 미소를 지을 필요도 없다. 실망을 느낄 때 이를 감출 필요도 없다.
초연함은 진리를 위해 몸과 마음을 집중하는 것이다. 이러한 초연함은 인기나 성취도와 상관없이 우리가 진실로 사람을 사랑하고 섬길 수 있는 '자유로움'을 선사한다. 머튼은 ,인간은 섬이 아니다 NoMan is an Island>에서 이렇게 말한다.
"우리는 즉각적인 보상을 기대하지 않은 채 일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순간적인 만족에 기대지 않은 채 사랑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그리고 어떤 특별한 인정도 바라지 않으며 사는 법을 익혀야 한다. 그리스도인이 지향하는 바는 사실 매우 크고 위대하다. 그러나 위대해지고자 하는 모든 열망을 내려놓지 않으면 위대함을 이룰 수 없다."
*이 글은 <토머스 머튼-은둔하는 수도자,문필가,활동하는 예언자>(키스 제임스,비아,2014)를 주로 참고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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