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지 않는 그릇
한 사람이 신께 빌었다
쌀 항아리를 채워 주시고
과일 광주리를 채워 주시고
고기 상자를 채워 주시라고
하도 졸라대는 통에 신은 허락해 주고 말았다
그런데 쌀 항아리와 과일 광주리와 고기 상자를
줏어 담으면 담는 대로 커지게끔 만들었다
그 사람이 쌀 항아리 앞으로 가면
쌀이 저절로 생겼다
쌀 항아리에 쌀을 퍼담는 그는 신이 났다
한참 쌀을 담다보면 쌀 항아리는 커지는데
고기 상자가 그대로인 게 그는 불만이었다
이번에는 고기 상자 앞에 섰다
이내 고기가 저절로 생겼다
고기를 집어넣는 대로 고기 상자 또한 커졌다
하나 과일 광주리가 그대로인 게 는 또 불만이었다
그는 과일 광주리 앞으로 갔다
한참 과일을 광주리 속에 담다보니
쌀 항아리가 작아 보였다
그는 다시 쌀 항아리한테로 갔다
그런데 이번에는
고기 상자가 작아 보이지 않은가
그는 고기 상자한테로 달려갔다
다음에는 또
과일 광주리한테로 달려갔으며
이렇게 번갈아 쌀 항아리와 고기 상자와
과일 광주리를 채우다 보니
어느덧 죽는 날이 다가왔다
그는 그제야 문득 깨달았다
게걸스러운 거지가 되어
살아온 자기 삶을
그는 신께 항의하였다
"어찌 이렇게 거지인 채로 살아오게 하였습니까?"
신이 대답하였다
"그건 내 탓이 아니라 순전히 네 탓이다
꽉 차지 않아도 만족할 줄 알았으면
그렇게 살지 않았을 것 아니냐."
정채봉님의 생각하는 동화 '나' 中에서
마
꽃은 피었다
말없이 지는데
솔바람은 불었다가
간간히 끊어지는데
맨발로 살며시
운주사 산등성이에 누워 계시는
와불님의 팔을 베고
겨드랑이에 누워
푸른 하늘을 바라본다
아름다움이란 뭔가요?
꽃잎이 크고 빛깔이 진하고 향기가 많이 나면,아름다운 건가요?
그런것은 진짜 아름다움이라고 할 수 없어
진짜 아름다움이란 꽃이 어떤 모양으로 피었는가가 아니야
진짜 아름다움은 보는 사람에게 좋은 뜻을 보여주고
그 뜻이 상대의 마음속에 더 좋은 뜻이 되어
다시 돌아올 때 생기는 빛남이야.
-정채봉,제비꽃-
* 정채봉(1946-2001)
전남 승주에서 출생,광양농업고등학교졸업,동국대학교 국문과 졸업,
동화<꽃다발>로 동아일보 신춘문예 동화부로 당선,샘터사 편집부 근무,동국대학교 예술대학 문예창작과 겸임교수
대한민국문학상(아동문학부문)수상<물에서 나온 새>,한국잡지언론상(편집부문)수상 월간<샘터>,새싹문학상 수상<오세암>,
동국문학상 수상<생각하는 동화>,세종아동문학상수상<바람과 풀꽃>,소천아동문학상수상<푸른 수평선은 왜 멀어지는가>
http://blog.naver.com/PostView.nhn?blogId=onul124&logNo=140182909384
정채봉의 동화들은 도덕적이다. 그러나 그의 도덕은 핏기가 없는 죽은 도덕이 아니라
펄펄 살아서 자연스럽고 감동적으로 사람들의 마음에 스며들어 일상의 지혜가 된다.
-김용택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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