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수봉과 서정 /김민영
어느 날 심수봉의 〈사랑밖엔 난 몰라〉를 듣다가 눈물이 나버렸다. 이유는 알지도 못한 채, 그저 눈물이 났다. 그 이후로 찾아 듣지는 않았지만 우연히 이 노래를 듣게 되면 역시나 또, 눈물이 났다. (…) 시인 백석은 이렇게 말했다./“높은 시름이 있고 높은 슬픔이 있는 혼은 복된 것이 아니겠습니까. 진실로 인생을 사랑하고 생명을 아끼는 마음이라면 어떻게 슬프고 시름차지 아니하겠습니까.”/세상의 모든 것에 슬퍼할 줄 아는 사람이 바로 시인이라면, 시에 담겨 있는 이 슬픔 역시 조금은 이해가 된다.
「농담과 그림자」(2021, 시간의흐름)
집 집마다 다르겠지만 우리 집안사람들이 명절날 주로 하는 오락거리는 고스톱이었다. ‘고스톱이다’라는 현재형을 사용하지 않는 이유란, 과거처럼 온 식구가 한꺼번에 모이는 경우가 드물어서다. 오고 가는 시간도 제각각이고, 오더라도 밥이나 한 끼 먹고 얼른 일어서기 바쁘다. 멀리 서로 뿔뿔이 흩어져 사느라 시간 맞추기도 힘들다. 설령 시간이 맞더라도 다들 모인 시늉만 하는 눈치다. 다음 세대엔 이마저도 없어지지 않을까 싶지만.
아무튼 그땐 밥 먹고 돌아서면 고스톱을 쳤다. 그렇게 딴 돈으로-잃은 돈으로-한번은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총출동해서 노래방엘 간 적이 있다. 기억에 남는 노래는 〈아빠의 청춘〉과 〈고향의 노래〉다. 전자는 “이 세상의 부모 마음 다 같은 마음 아들딸이 잘되라고 행복하라고……”라는 가사로 이루어져 있다. 지금 생각하면 이 노래를 부른 사람은 아버지에 대한 원망이 많았던 것 같다. 아니면 가사 속 박 영감처럼 자식들만을 위해 살아가는 아버지를 내심 바랐는지도 모르겠다. 그 ‘아버지’는 물론이고 노래를 불렀던 이도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니 확인할 재주가 없다. 후자는 쉰이 넘은 어른이 노래방에서 부를 줄 아는 게 고작 동요라는 데서 오는 문화적 이질감 탓에 기억에 남은 노래다.
노래방에서의 내 18번은 황금심의 〈외로운 가로등〉이다. 비 오는 거리에서라며 시작하는 이 노래는 실연의 아픔으로 절절하다. “울리고 떠난 그 사람을 내 어이 잊지 못하나”라거나 “사랑에 병든 내 가슴 속” 등의 가사가 그야말로 신파인데, 하기야 그 맛이 좋아 부른다. 그러고 보면 내가 아는 작가들은 모두 신나고 즐거운 곡보다는 가슴을 쥐어짜듯 애절한 노래들을 즐긴다. 술 한 잔 마시지 않은 맨정신으로 이용복의 〈잊으라면 잊겠어요〉를 열창하던 모 시인이 떠오른다. 그녀가 마이크를 잡기에 앞서 줄줄이 가곡들을 한 곡씩 뽑은 후라, 점잖은 자리에서의 대중가요가 주는 충격이 가히 메가톤급이었다. 그 “슬프고 시름” 가득한 노래들. “세상의 온갖 슬프지 않은 것에 슬퍼할 줄 아는 혼”을 가진 사람들이 바로 여기 있구나, 확인하는 이번 명절일 수도 있겠다. 노래는 슬프고 시름차더라도 부디, 즐겁고 행복한 연휴 보내시길 바란다.
신상조(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