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상봉의 내 돌아갈 그립고 아름다운 별-1
오늘부터 매주 한 차례 한상봉이 2004년에 바오로딸에서 출간했으나, 현재 절판이 된 <내 돌아갈 그립고 아름다운 별>을 일꾼 사이트에 연재합니다. 이 글은 한상봉이 1999년 이후 귀농해서 살며 성찰했던 생활글입니다. -편집자
사진출처=pixabay.com
이 책에 담긴 이야기는 지난 3년 동안 <야곱의 우물>을 비롯해서 이런저런 잡지에 던져두었던 글입니다. 이 글들을 모으고 엮으면서 다시 읽어보니, 죽음에 기대어 삶을 이야기하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습니다.
동전의 앞뒷면처럼 맞붙어 있는 삶/죽음의 친밀함이 부담스럽다고, 어린 시절 한 번쯤 해보았음직한 놀이처럼 동전의 한 면을 돌에 갈아놓으면 이미 그것은 ‘돈’의 구실을 할 수 없어집니다. 마찬가지로 삶 속에는 이미 죽음이 스며 있고, 죽음 또한 삶의 연장임을 믿을 수밖에 없습니다.
나도 모르게 이런 생각에 사무치게 된 것은 아마도 시골생활 때문인 것 같습니다. 세상을 버린 듯이 산골에 들어가 4년 넘게 살면서, 무수히 많은 살생을 감행하였습니다. 겨울이면 나무를 베고, 봄이 오면 땅을 갈아엎고, 여름이면 들풀을 베거나 아예 뽑아버리고, 가을이면 세상의 모든 생명이 안타깝게 피흘리거나 황금빛으로 변하며 시들어가는 걸 봐야 합니다.
죽음을 기다리는 생명들은 정말 아름답습니다. 아침 햇살보다 저녁 무렵에 깃드는 황혼이 더 깊고 그윽한 상념에 젖게 합니다. 그리고 죽음 같은 밤이 하늘과 땅에 가득 들어서면, 놀랍게도 그 모든 세상이 아침마다 밝아지듯이, 봄은 누가 나서지 않아도 자연스레 찾아옵니다. 인간의 살생에도 세상은 우리에게 더 많은 생명을 선물처럼 주고 있습니다. 죄송하고도 고마운 일입니다.
예전에 녹색평론사에서 서평을 부탁받은 적이 있었습니다. 그때 읽은 <소박한 삶의 철학>의 저자 듀안 엘진은 참 대단한 예지(叡智)를 갖고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자유롭고 솔직하고 의식적으로 삶을 대하기 위해 죽음에 대해 묵상할 것을 요청하였습니다. 우주가 바로 우리의 고향이며, 죽음이 우리의 친구라는 사실을 기억하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상상도 하지 못할 거대한 힘과 섬세한 솜씨로 하느님께서 디자인하신 우주 안에 살고 있으며, 그 신비는 우리 주위 어느 곳이나, 우리 몸을 이루는 분자 하나하나에도 스며 있음을 깨달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엄청난 우주 안의 한 존재로 기적처럼 살아 있음을 알고 있는 것만으로도 우린 충분히 행복할 수 있다고 말합니다.
사진출처=pixabay.com
친구로서 죽음이란 우리가 유한한 생명임을 알려주며, 우리가 이 지구상에 살면서 서로 사랑하고 배워갈 시간이 짧다는 것을 솔직히 인정하게 해줍니다. 죽음은 우리가 사회적 지위나 물질적 부를 궁극적인 목적으로 보지 않도록 도와주는 친구이며, 우리가 지금 이곳에 존재하는 이유와 의미를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게 합니다. 이를테면 죽음은 우리를 삶의 현실 속으로 되돌려 주는 단호한 친구라는 것입니다.
그런 뜻에서 ‘내가 돌아갈 그립고 아름다운 별’은 저 세상이 아니라 이 세상이 됩니다. 설령 저 세상이 있다 해도 방문을 열고 나가면 마당이 나타나듯이, 이 세상과 다르지 않을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나’ 자신의 의식이겠습니다. 방에 앉아 있던 내 영혼이 아름답다면, 마당에 서 있는 나 역시 햇살 가득히 빛날 것이라고 믿습니다.
햇볕이 따뜻하고 수선화가 싹을 밀어올리고 있습니다. 상사화(相思花) 싹이 파랗게 올라와 있습니다. 땅 밑에 숨어 있는 알뿌리들이 느껴집니다. 그 알뿌리들처럼 캄캄한 현실 속에서 오히려 은총이 자라고 있음을 느낍니다.
-2004년 4월 무주 광대정에서
한상봉 이시도로
<도로시데이 영성센터> 코디네이터
<가톨릭일꾼> 편집장
출처 : 가톨릭일꾼(http://www.catholicworke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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