ㆍ황금보다 귀한 꽃
스티브 잡스의 매력은 돈이 아니지요? 편리한 컴퓨터 세상도 아니고, 끝없는 혁신도 아닙니다. 그의 매력은 직관입니다. 그는 직관을 따라 산 자, 직관이 살아있는 자였습니다. 나는 잡스를 돈이 덫이 되지 않은 경영자로, IT업계 황제라는 왕관이 덫이 되지 않은 인간으로 기억합니다.
저 그림은 화려한 왕관을 내려놓는 자의 고뇌를 담고 있습니다. 그림은 낭만적입니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초라한 거지소녀를 사랑해서 세상에서 제일 화려한 왕관을 내려놓고 있는 왕을 그리고 있으니까요.
지금 사랑 앞에서 쩔쩔매는 저 왕은 원래 여인에게 관심이 없었다지요? 여인에게 관심이 없는 남자, 얼마나 편안하게 살았겠습니까? 그러나 또 얼마나 삭막하게 살았겠습니까? 자기 자신이 얼마나 삭막한지도 모른 채 황금빛 왕관에 취해. 그런데 그 왕의 영혼을 충만하게 채워줄 여인이 하필 거지소녀일까요?
번 존스 ‘코페투아왕과 거지소녀’ 1880~84년, 캔버스에 유채,
290×136㎝,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뉴욕
아무것도 가진 게 없는 거지이니 왕관을 지키는 데는 도움이 안되겠습니다. 차라리 왕관을 내려놓아야 할 판이지요. 저런 상황이라면 왕으로 사는 것은 괴롭고, 왕관을 내려놓은 것은 외롭겠습니다.
저 왕은 기꺼이 왕관을 내려놓고 있습니다. 왕은 지금 사랑하기를 원합니다. 왕에게 소녀는 영혼이고 빛이고, 직관입니다. 왕이 사랑하는 저 여인을 보십시오. 손에 아름다운 꽃을 들고 있는 소녀는 지금 자신을 보고 있는 왕을 보고 있지 않습니다. 그녀는 유혹을 모르는 소녀 같습니다. 그러나 몸동작과 얼굴표정으로 봐서 소녀는 분명 사랑의 꿈으로 긴장하고 있습니다. 소녀는 왕관을 내려놓고 소녀의 손을 잡을 것 같은 왕으로 인해 여인이 될 준비를 하고 있는 겁니다.
나는 무릎 위에 왕관을 내려놓고 소녀를 바라보는 왕이 마음에 들었습니다. 지금껏 누리고 모은 것을 버리는 데서 오는 고뇌를 기꺼이 감당하고 그 고뇌 속에서 새로운 길을 보고 있는 왕에게 박수를 쳐주고 싶습니다.
원래 사랑이란 게 그런 게 아닌가요? 계급장을 떼고 자기를 바라보게 하는 힘! 여자는 계급장을 떼지 못하는 남자를 사랑하지 못합니다. 아무것도 가진 게 없어도 당당한 여인이 어찌, 왕관 뒤에 숨어 자기를 보여주지 않는 남자를 사랑하겠습니까. 계급으로 정략결혼은 할 수 있어도 깊은 사랑을 할 수는 없는 법이니까요.
왕관을 써보셨습니까, 왕관을 즐겨 보셨습니까? 꼭 정치권력만이 왕관인 것은 아닐 겁니다. 왕관이란 인생을 빛나게 하는 내 인생의 자랑거리 같은 거, 아니겠습니까? 저 그림은 돈이든, 명예든, 권력이든, 그 뒤에 숨어서 있는 그대로의 모습이 되기 힘든 ‘나’에게 묻습니다. 네가 자랑스러워하는 왕관이 어쩌면 너의 덫인지도 모른다고.
어쩌면 ‘나’는 별 거 아닌 것을 왕관인 양 붙들고 고뇌하는 왕 같고, 우리 앞에 저 아름다운 소녀는 그동안 보살피지 못해 거지처럼 버려졌던 내 마음의 직관은 아닐까요? 가끔 주변에서 보았습니다. 많이 가진 자가 가진 것을 지키느라 가진 것이 덫이 되는 상황을. 돈을 너무 믿어 돈을 쫓다가, 서푼도 되지 않은 권력을 왕관인 줄 알고 붙들고 거들먹거리다가 진정한 것을 거지 취급하는 것을.
나는 생각합니다. 진정으로 강한 사람은 왕관에 집착하는 사람이 아니라 왕관을 내려놓을 수 있는 사람, 스스로 초라해지는 걸 감당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 왕관을 내려놓은 자리, 거기를 생명의 꽃을 든 소녀가 채울 테니까요. 아네모네를 쥐고 있는 소녀야말로 왕관에 집착한 내 자신이 잃어버리고 있었던 직관이 아닐까요?
잡스의 매력이 그대로 드러났던 스탠퍼드대 연설엔 죽음이라는 절체절명 앞에서도 생명의 꽃, 직관의 깨달음을 얻었던 인간 중의 인간이 보였습니다. “모든 외형적인 기대들, 자부심, 실패의 두려움, 그런 것들은 죽음 앞에서 아무것도 아닙니다. 죽음은 인생에서 큰 결정을 내리는데 도움을 주는 가장 중요한 도구입니다.” 그가 얻은 지혜는 이것이었습니다. “다른 사람의 견해가 내면의 목소리를 가리는 소음이 되지 않게 하라. 마음을 따라가고, 직관을 따라가라!”
저 소녀는 ‘나’의 직관입니다. 직관이 말합니다. 왕관을 바라보고 살지 말라, 남을 바라보고 살지 말라, 오로지 ‘나’를 바라보고 살아라. 직관을 따라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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