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 Review
복음의 정치학
'사랑은 정의의 영혼이고,정의는 사랑의 몸이다"
<내가 그 사람이다>,한상봉지음,가톨릭일꾼,2018.
종교는 인민의 아편이 아니다
'종교는 인민의 아편인가,아니면 해방의 도구인가?" 이 질문은 역사성을 지닌 엄중한 발언이다. 역사적으로 교회는 사회 기득권층의 옹호자로 자리매김해 왔으며, 하느님을 군주처럼 표현해 왔기 때문에 충분히 비판 받을 만하다. 전통적인 '정교분리'론음은 마치 교회가 세상과 무관한 존재처럼 보이게 하지만,정작 교회는 불의한 정권에 대한 타협을 통해 자신의 기득권 역시 보장받아 왔다. 그러나 가톨릭교회는 제2차 바티칸공의회 이후에 자신을 "보편적 구원의 성사"로 규정하면서,사회현안에 대한 복음적 식별을 요청하고 신앙인들의 사회적 투신을 독려해 왔다.
특히 제3세계의 민중들이 독재정권에 저항하는 과정에서 가톨릭교회는 '가난한 이들을 위한 가난한 이들의 교회'로 나아가기를 희망했다. 그 정점에서 해방신학이 출현하고,주교들은 흐림 없는 눈으로 '가난한 이들에 대한 우선적 선택"이라는 명제를 공식적 교리안으로 끌어들였다.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의 강생사건을 두고,민중을 당신 백성으로 삼으려는 하느님의 정치로 보기 시작했다. 이 과정에서 발생하고 진화된 교회문헌이 '가톨릭 사회교리'이다.
교회 문턱을 넘어서지 못하는 사회교리
가톨릭교회에서는 레오 13세 교종이 1891년에 발표된 <노동헌장>을 비롯해 그동안 교회문헌으로 발표된 사회교리를 집약해<간추린 사회교리>(2004년)를 교황청 정의평화평의회 이름으로 펴냈다. 그러나 본문만 430페이지에 달하는 이 문헌을 신자들이 물론이고 성직자들조차 사회교리는 '믿을 교리'에 덧붙여진 부록 같은 것이었다. 봐도 그만 안 봐도 그만인 문헌이었다. 예비신자 입문교리에서도 사회교리를 가르치지 않았다. 지난 100년에 걸쳐 교종들이 '시대의 징표'를 읽고 교도권 차원에서 절박하게 사목적 대안을 마련한 문헌들이 교회 문턱에 걸려 더 이상 세상으로 나아가지 않았다.
프란치스코 교종은 교황권고 <복음의 기쁨>을 발표하면서 신앙과 사회교리가 얼마나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는지 잘 보여주었다. 방한을 전후해 '고통 받는 형제들 앞에서 중립은 없다.'는 감동적인 말을 던진 교종은 '정치는 자선의 최고형태"라고도 말했다. 우리가 어떤 정치적 사회적 문화적 경제적 선택을 할 때, 우리는 어떤 신앙고백을 하고 있는 셈이라는 것이다. <내가 그 사람이다-가톨릭교회의 사회적 가르침>은 사회적 참상을 경험하고 있는 사람이 곧 그리스도라고 고백한다. 그러므로 세상의 모든 문제는 사회적이면서 동시에 신학적인 사안이다. 신앙인들에게 모든 정치행위는 신앙행위라는 것이다.
"하느님 나라에 참여한다는 것은 하느님의 통치를 받아들이는 것이고,신성시된 정치권력의 신비를 걷어내고,세상을 하느님께 봉헌함으로써 거룩하게 만드는 일이다. 그러니 신앙행위는 사실상 정치행위이기도 하다. 이처럼 교회는 복음의 시선으로 개인과 사회,정치와 경제 등 삶의 모든 분야에 걸친 재구성을 요청하는 '복음의 정치학'을 선포한다. 실상 예언자들처럼 '하느님의 정치'를 한다는 것은 만인의 정의를 위해 투쟁하는 것이며,정의의 성취는 곧 하느님께 영광을 돌려드리는 행위이다."(116P)
이번에 출간한 <내가 그 사람이다-가톨릭 교회의 사회적 가르침>은 교황청에서 발행한 <간추린 사회교리>를 따라가면서,저자 자신이 경험한 사회적 영성을 160페이지의 작은 책자에 담았다.
가톨릭 사회교리의 요약본이라고 불러도 좋을 이 책은 '교회 안에서 사회교리가 상식이 되는 날"을 희망하는 책이다. 그래서 가능한 짧게, 가급적 쉽게 썼지만,사회교리의 핵심을 고스란히 간추려 놓은 책이다. 사회교리서의 기본 주제들을 다루면서,서두에 하느님과 예수,그리고 교회에 대한 장을 덧붙임으로써,사회교리가 가톨릭신앙의 원천에 뿌리를 내리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한상봉은 신앙이란 처음부터 정치적이었다는 입장이다. 하느님이 히브리 노예들을 선택한 것도,예수가 목수의 아들이었고, 그의 제자들이 대부분 노동하는 하층민이었다는 사실은 그리스도교 신앙이 이미사회적임을 드러낸다.
by Meinrad Craighead
"예수님은 공생활을 시작하시면서,회당에서 이사야 예언서를 빌어서 가난한 이들을 위한 희년을 선포하는 것을 자신의 '사명'이라고 선언하셨다. 그래서 가난한 이들을 염두에 두지 않고 그리스도교 신앙을 설명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하느님께서는 인간을 위하여 스스로 하느님이심을 버리시고,사람이 되어 지상에 당신의 천막을 치셨다. 더군다나 하느님께서는 인간의 몸으로 오셨는데,고결한 왕족이나 대사제나 지식인의 몸이 아니라 더러운 천민의 몸으로 오셨다."(25-26p)
공동선을 위해 권력 아닌 형제애를 호소한다.
가톨릭교회의 사회교리는 하느님의 형상을 닮아 창조된 인간의 존엄성이 보장되는 사회의 '공동선'을 이루기 위해 자본과 노동,정치와 환경,평화 등 사회적 문제들을 보조성과 연대성의 원리에 따라서 해결하자고 요청한다. 보조성은 권력의 독점을 경계하며 자율적인 당사자주의를 선호하며,특별히 권력으로부터 소외된 가난하고 무력한 이들의 문제해결을 위해 만인의 연대를 촉구한다. 만인이 만인에게 늑대가 아니라,만인이 형제애 안에서 공동선을 추구하기를 희망한다.
그리스도인이란 "무엇보다 자기 삶의 증거로써 다른 사람들에게 그리스도를 분명하게 보여주는 사람들"이기에,이들에게는 영신생활과 사회생활이 분리되지 않는다. 이들에게 신앙과 삶은 통합되어야 하고, 그래서 '활동하면서 관상하고, 관상 속에서 활동하는"것이 필요하다. 즉,하느님에 대한 갈망과 사회 복음화를 통합시켜야 한다. 한편 사회교리는 '세상에 켜켜이 쌓여 있는 불의 앞에서,이 문제를 속시원히 해결할 수 있는 마술 같은 해법이 있으리라는 순진한 기대를 하지 않는다."고 밝힌다. 그리스도인들은 하느님 나라에 대한 비전 안에서 "지상낙원이 결코 존재하지 않을지라도 '더 나은 세상'을 건설할 수 있다.'는 확신을 가진다.
사회교리는 더 나은 세상이 사회정의만으로 충분하지 않으며,사랑만이 인간을 완전히 변화시킬 수 있다고 믿는다. 힘에 의한 평화를 거부하고,하느님 자비에 호소하는 평화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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