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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속 도시] (64) 예루살렘 (상)

모든 2 2018. 1. 30. 13:52




[성경 속 도시] (64) 예루살렘 (상)
 
하느님의 집, 첫 성전을 세운 곳
 


▲ 예루살렘은 유다교, 그리스도교, 이슬람교 모두의 주요 성지로 분쟁이 끊이지 않는 곳이다. 
    사진은 2014년 5월 프란치스코 교황이 통곡의 벽에서 기도하고 있는 모습. 【CNS】



최고의 성지, 예루살렘은 늘 기대와 설렘을 주는 도시다. 예루살렘은 유다교, 그리스도교, 이슬람교 모두의 주요 성지로, 어떤 장소는 시간대별이나 구역별로 나눠 이들 세 종교가 관리한다. 예루살렘은 유다인들에게 역사와 종교와 민족 의식의 원천이고, 그리스도교 신자들에게는 가장 중요한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의 현장이다. 또 이슬람교도들에게도 예루살렘은 중요한 성지이다. 그래서 거대한 옛 도시 성벽으로 둘러싸여 있는 구시가지에는 유다인 지역과 아르메니아 지역, 그리스도교 지역, 무슬림 지역 등 4개 지역으로 구분돼 있다. 1948년 아랍과 이스라엘 전쟁 이후, 구시가지와 동(東)예루살렘은 트란스요르단에, 서(西)예루살렘은 이스라엘에 분할되었다가 1967년 이스라엘이 동예루살렘을 점령했다.

‘평화의 도시’라는 이름이 무색하게 예루살렘은 지금도 분쟁이 끊이지 않는 곳이다. 어디서나 기관총을 휴대한 군인들을 쉽게 볼 수 있고 출입 관리도 까다롭기로 유명하다. 그런데 예루살렘은 국제법상으로는 어느 나라에도 속해 있지 않은 도시다. 현재 이스라엘이 동예루살렘을 인위적으로 점령 중이다.

지형적으로 동쪽으로는 키드론 골짜기와 남쪽으로는 힌놈 골짜기의 가운데 솟은 구릉에 사람들이 모여 살았던 것은 기원전 약 3000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산악 지형의 예루살렘은 외부 침입을 쉽게 막을 수 있는 성채를 중심으로 서서히 도시가 발전했다. 이스라엘이 가나안 정복 후 약속된 땅을 분배할 때 예루살렘은 본래 벤야민 지파에 속하였던 곳이다(여호 18,11-28 참조).

성경의 기록을 보면 예루살렘의 가장 유명한 지도자는 다윗왕이다. 기원전 약 1000년경 이스라엘의 선조 다윗 왕이 구릉에 위치한 ‘시온의 성’이라 불리던 도시를 정복한 후 유다인들은 이곳을 ‘다윗의 성’이라 불렀다. 다윗 임금이 부하들을 거느리고 예루살렘으로 가서 그 땅에 사는 여부스족을 치려 하자, 여부스 주민들이 다윗에게 말하였다.

“‘너는 이곳에 들어올 수 없다. 눈먼 이들과 다리 저는 이들도 너쯤은 물리칠 수 있다.’ 그들은 다윗이 거기에 들어올 수 없으리라고 여겼던 것이다. 그러나 다윗은 시온 산성을 점령하였다. 그곳이 바로 다윗 성이다”(2사무 5,6-7).

그는 계약의 궤를 예루살렘으로 옮겼고 그의 아들 솔로몬은 예루살렘의 첫 성전을 건축했다. 그 이후 예루살렘은 이스라엘 민족과 역사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니게 되었다. 서른 살에 이스라엘 임금이 된 다윗은 헤브론에서 7년 반 동안, 예루살렘에서 33년 동안 이스라엘과 유다를 다스렸다(2사무 5,3-5 참조).

다윗이 죽은 후 그의 아들 솔로몬 왕은 도시에 왕궁과 신전 및 성채를 새로이 건설하고 언약궤를 신전 안에 보관하였다. “또한 주님께서 우리 조상들을 이집트 땅에서 이끌어 내실 때에 그들과 맺으신 계약을 넣은 궤를 둘 곳을 여기에 마련하였소”(1열왕 8,21).

예루살렘은 신약에서도 중요한 장소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지상 생활에서 시작하여 그분의 죽음과 부활과 승천이 이뤄진 장소이다. 성령 강림 후 사도들은 한동안 예루살렘에 머물면서 교회 공동체를 구성하여 복음을 선포하였다. “하느님의 말씀은 더욱 자라나, 예루살렘 제자들의 수가 크게 늘어나고 사제들의 큰 무리도 믿음을 받아들였다”(사도 6,7).


허영엽 신부(서울대교구 홍보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