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마동 성당 주보 읽기/2016년 주보

연중 제5주일 2016년 2월 7일(다해)

모든 2 2016. 2. 7. 13:00

 온양 성당(아산지구)

본당 설립:1948.8.22/주보성인:예수 성심 

 

  +  루카 복음. 5,1-11


<그들은 모든 것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랐다.>

 

  예수님께서 게네사렛 호숫가에 서 계시고, 군중은 그분께 몰려들어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있을 때였다. 그분께서는 호숫가에 대어 놓은 배 두척을 보셨다. 어부들은 거기에서 내려 그물을 씻고 있었다. 예수님께서는 그 두 배 가운데 시몬의 배에 오르시어 그에게 뭍에서 조금 저어 나가 달라고 부탁하신 다음, 그 배에 앉으시어 군중을 가르치셨다.

 

  예수님께서 말씀을 마치시고 나서 시몬에게 이르셨다. "깊은 데로 저어 나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아라."시몬이 "스승님, 저희가 밤새도록 애썼지만 한 마리도 잡지 못하였습니다. 그러나 스승님의 말씀대로 제가 그물을 내리겠습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그렇게 하자 그들은 그물이 찢어질 만큼 매우 많은 물고기를 잡게 되었다. 그래서 다른 배에 있는 동료들에게 손짓하여 와서 도와 달라고 하였다. 동료들이 와서 고기를 두 배에 가득 채우니 배가 가라앉을 지경이 되었다.

 

  시몬 베드로가 그것을 보고 예수님의 무릎 앞에 엎드려 말하였다. "주님, 저에게서 떠나 주십시오, 저는 죄 많은 사람입니다."사실 베드로도, 그와 함께 있던 이들도 모두 자기들이 잡은 그 많은 고기를 보고 몹시 놀랐던 것이다. 시몬의 동업자인 제베대오의 두 아들 야고보와 요한도 그러하였다.

 

  예수님께서 시몬에게 이르셨다. "두려워하지 마라. 이제부터 너는 사람을 낚을 것이다." 그들은 배를 저어다 뭍에 대어 놓은 다음, 모든 것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랐다.

 

 

<말씀의 향기>

 

입술이 더러움 사람, 죄 많은 사람. -최명석 마리아노 규암 주임-

 

  낚시가 취미인 본당 신분님이 신학생들에게 밤낚시를 가자고 하신 적이 있다. 신학생 세 명이 신부님을 따라갔고 저수지에 떠 있는 좌대를 둘 얻었다. 밤에 낚시를 해야 잘 잡힌다는 어디선가 들었던 이야기를 떠올리며, 수면 위에 떠 있는 낚시를 바라보다 무거운 졸음에 지고 말았다. 아직 새벽이 먼 시간 , 산 위에서 심한 바람이 불더니 저수지 물을 다 뒤집어 놓았고, 좌대에 묶어 놓은 배가 좌대에 부딪히며 꼭 부서질 것 같은 소리를 내었다. 낚시를 걷고 작은 배를 타고 나오는데 바람에 물이 파도가 되어 배를 넘어 들어온다. 옷이 다 젖어서 물이 떨어져도 움직이지 못했다. 움직이면 배가 뒤집힐 것  같았기 때문이다. 배 밑창이 저수지 가장자리 흙에 스치는 소리가 들렸을 때에야 비로소 안심이 되었다. 나중에 본당 신분님에게 그때를 말씀드리자 웃으시며, 처음이자 무서운 거지 하셨다. 그래도 베드로 사도의 경우를 보면 '일평생 어부였던 사람도 예수님 따라 물 위를 걷다가 파도를 보고 무서워서 빠졌었는데요'라고 속으로 중얼거렸다.

 

  고향 나자렛에서 쫓겨났다는 랍비가 가파르나움으로 흘러들어 왔다는 소문은 들은 시몬은 시큰둥했다. 원래 어부와 랍비는 어울릴 인연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런 생각을 깨트린 건 흘러들어온 랍비의 행동으로 고생하는 장모를 낫게 해 준 것이다. 시몬은 그 일을 잊지 않았다. 그래서 오늘 마치 자기의 배처럼 시몬의 배에 오른 랍비의 부탁을 쉽게 들어주었다. 일종의 품앗이였으니까! 예수님의 가르침 중에도 그는 예수님과 함께 단둘이 배에 있었다. 그러나 생각은 씻다만 그물에 가 있었다. 가르침이 끝났을 때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시몬은 정중히 거절하는 말을 했어야 했는데  그 뒤에 생각지도 않은 말이 따라붙었다. '그러나 스승님 말씀대로 제가 그물을 내리겠습니다."놀랍게도 한낮인데도 엄청난 물고기가 잡혔다. 두 배를 가득 채워 배들이 가라앉을 지경이 되었다고 한다. 여기서 정말 놀라운 일이 일어난다. 가라앉을 만큼 위험한 배에서 시몬 베드로가 예수님의 무릎 앞에 엎드린 것이다. 구경하던 모든 사람, 가르침을 듣고도 자기를 떠나지 않은 군중들이 , 그리고 시몬의 동업자들이 억 하는 비명을 지를 만큼 위험하게 가득 찬 물고기 사이클, 아니 물고기 위에서 엎드렸던 것이다."저는 죄 많은 사람입니다."

 

  환시 속에서 하느님을 뵌 이사야 예언자는 이미 예언자로서의 사명을 수행하는 중이었음에도 이렇게 말한다. "나는 입술이 더러운 사람" 베드로 사도는 시몬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어부였을 때 일상적인 생활에만 열중이었던 자신에게 나타난 예수님이 정체를 알아보고 말했던 것이다. "저는 죄 많은 사람입니다."그의 입술이 과연 우리보다 더 더러웠을까? 그의 죄가 우리보다 더 많았을까? 하느님의 말씀을 대신 전하던 예언자도, 일상생활이 충실하던 시몬도, 모두 자기의 부족함을  고백하는 데 주님의 고상 앞에서 우리는 진정 그렇게 말하고 있는지 생각해 보아야 하겠다.

 

 

<고해성사 다시 보기(1)>

 

자비, 하느님의 영원한 짝사랑

 

'자비의 특별 희년'을 살아가고 있다. 믿는 이들과 믿는 이들을 바라보는 사람들 모두가 측량할 수 없는 사랑과 용서를 베푸시는 하느님의 자비하신 얼굴을 바라보고 그러한 아버지의 자비를 우리 역시 살아가도록 초대받은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궁극적으로 체험해야 할 하느님의 사랑과 자비는 과연 어떠한 모습일까?

 

  옛날에 어느 망나니 같은 아들을 둔 홀어머니가 있었다. 마음이 비뚤어진 아들은 어릴 적부터 사고만 치다가 커서는  강도들의 소굴로 들어갔다. 두목은 아들에게 자신들의 무리에 들어오기 위해서는 몇 가지 비인간적이고 잔인한 시험을 통과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모든 시험을 우수한(?) 성적으로 통과한 아들에게 부과된 마지막 시험은 자기 어머니의 심장을 가져오는 것이었다.  어머니의 심장을 꺼내 달려가던 아들은 중간에 다리가 후들거려 그만 넘어지고 말아다. 그때 어머니 심장으로부터 들려온 한 마디, '얘야 다치지 않았니?"

 

「신은 모든 곳에 있을 수 없기에 어머니를 만들었다」라는 제목이 있듯이, 자식을 향한 대책 없는 부모의 사랑과 헌신이야말로 한 인간이 이 지상에서 신(神)을 경험할 수 있는 본능적이면서도 근원적인 체험이 될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부모의 마음은 누군가의 마음과 특성을 닮아 있다. 바로 하느님의 자비이다. "자비를 베푸시는 것이 하느님의 고유한 본질입니다. 바로 그 자비 안에서 하느님의 전능이 드러난다."는 토마스 아퀴나스 성인의 말처럼 그분의 자비는 결코 나약함의 표시가 아니라, 전능하신 당신의 특성이다.

 

  루카복음 15장에 등장하는 「잃어버린 아들의 비유」에서 예수님은 당신 생애를 통해 궁극적으로 보여주시고자 하셨던 하느님의 모습을 우리에게 전해 주신다. 비록 우리는 용서하고 자비를 베푸는데 '대상'과 '횟수'에 제한을 두지만(루카 18,21,33 참조), 하느님의 자비와 용서는 한량없다. 무조건적이다. 그분은 당신이 우리로부터 사랑받으셨기 때문에 사랑하시는 것이 결코 아니다. 비록 사랑받지 못하실 때라도 그분은 '언제나' 사랑하신다. 그분 사랑이 '하나의 응답'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분의 자비와 용서는 거저 주는 선물이요. 그래서 '은총'인 것이다. 우리가 믿는 하느님은 '이유 없는 사랑'이시다.

 

  '자비의 특별 희년'에 우리는 자주 자비로우신 아버지께 기도를 드리며 그분의 얼굴을 바라보라고 요청받는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우리 편에서 자비하신 그분을 만나려는 구체적인 실천이 요구된다. 가장 좋은 실천과 체험은 "고해성사를 통한 하느님과의 화해"이다 무엇보다 먼저 하느님과 화해할 때, 우리에게 올해는 '자비의 해방을 체험하는 특별한 해'(特別 禧年)가 될 것이다.

 

-송인찬 신부 대전가톨릭 대학교 (신학원 전례 담당 겸 전례 꽃꽂이 교육원장)-

 

 

 <이충무의 행복 나침반(96)>

 

In or Out?

양심,

불변의 최고 득점

 

  중학교 시절, 책받침에 등장하는 청춘스타에 아이들이 열광하고 있을 때, 저는 엉뚱하게 호주 여자 테니스 선수에 푹 빠져 있었습니다. 초롱초롱 빛나던 눈동자에 꼬불꼬불한 금발머리, 이름마저 테니스를 위해 태어난 것 같은 '이본느 굴리공'이라  불렸던 그 선수.. 이국적인 그녀가 좋아서였는지 테니스라는 운동이 매력적이라 그랬는지 잘 모르겠지만, 저는 중학교 시절을 테니스에 푹 빠져 보냈습니다. 처음 라켓을 쥐고 공을 치면서, 마치 그 공이 그녀를 만나기 위한 첫 걸음인 것처럼 온 힘을 다했던 기억에 지금도 웃음이 납니다.

 

  세월이 흘러 이제 더 이상 테니스를 하지 않지만, 요즘 갑자기 또 한 명의 테니스 선수가 제 우상이 되어 가슴을 설레게 합니다. 세계 랭킹 25위에서 30위권을 오가는 스물다섯 살의 젊은 미국 테니스 선수 '잭 속크(Jack sock)'가 바로 그 주인공입니다.

 

  그가 제 우상이 된 계기는 그의 환상적인 '양심'플레이 때문이었습니다. 얼마 전 호주에서 열린 국제 테니스대회에서 상대방 선수와 중요한 일전을 치루고 있던 그는 시합도중 참으로 엉뚱한 제안을 해 관중들과 심판, 그리고 상대방 선수를 놀라게 했죠.

 

  당시 상황은 이랬습니다. 상대 선수가 서브를 넣었는데 심판은 아웃이라고 생각해서 "폴트'를 선언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잭 속크가 자기가 보기엔 아웃이 아닌 것 같다며 상대방 선수에게 비디오 판독을 신청해 보라는 제안을 했습니다.

 

  이 황당한 제안에 처음엔 모두들 어리둥절했지만, 판독 결과 결국 잭 속크의 말대로 상대방 서브가 아웃이 아님이 판정되자, 심판과 관중들 모두 환하게 미소를 지으며 잭 속크에게 아낌없는 박수를 보냅니다. 상대방 선수도 엄지를 치켜세우며 그에게 고마움을 표했죠.

 

  친선 경기도 아니고, 상금이 걸려 있으며, 자신의 랭킹 순위가 바뀔 수도 있는 중요한 시합.. 한 포인트라도 어떻게 하든 더 얻어야 하는 그 살벌한 승부의 순간에 자신에게 돌아온 유리한 판정을 스스로 뒤집어 손해를 보는 이 선수의 행동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요?

 

  결국 시합에서 잭 속크는 패했지만 그 누구도 그를 패배자라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의 행동은 잠들어 있던 '양심'의 가치를 일깨워 줬기 때문입니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승자가 되기 위해 영혼마저도 팔아 버릴 것 같은 숨 막히는 오늘.. 우리 양심은 우리 마음에 '인'입니까 아니면 '아웃'입니까?

 

-이충무 바오로 /극작가, 건양대학교 교수-

 

 

작은 기쁨

큰 웃음

함께하는

마음 평화

 

일상(日常)에서

일생(一生)으로

 

글. 그림 이순구(베네딕도)

 

 

 

텅 빈 손 안의 자유 -안젤름 그륀-

 

사순절은 예수의 수난을 기념하는 부활주일 전 40일간을 말합니다. 사순절에는 단식을 하며 마음을 평온하게 합니다. 단식을 하는 첫째 날에는 분노나 실망과 같이 당신을 억압했던 수많은 생각과 감정을 만나게 됩니다. 사순절은 진정한 배고픔이 무엇인지를 깨닫게 해줍니다.

 

나는 도대체 누구일까? 내 마음 가장 깊은 곳의 소원과 동경은 무엇일까? 내가 가장 깊게 상처를 받은 일은 무엇일까? 내가 실현할 수 없고 만족하지 못한 일은 무엇일까? 내가 매우 놀라 당황한 것은 무엇이었을까? 나는 사순절 동안 내면에 떠오르는 이런 질문들을 만나게 됩니다. 그러기에 사순절은 자기 자신을 더욱 잘 알고, 자기 자신과 한층 더 가까워질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됩니다. 우리 모두가 이런 질문들과 대면할 수 있는 기회가 있길 소원합니다.

 

자신의 욕구를 시인하고 그 욕구와 화해해야 합니다. 그럴 때 비로소 욕구로부터 멀어질 수 있습니다. 욕구를 단념하는 것은 마음속 자유의지의 표현입니다. 당신은 아침 커피와 저녁 맥주를 무척 좋아한다고 하였습니다. 사순절 기간에는 이 자유를 포기해야 합니다. 하지만 그 이후에 당신은 그것의 소중함을 깨달을 수 있을 것입니다.

 

자기 신뢰가 약한 자는 마음의 공허함을 메워줄 수많은 것들이 필요합니다. 삶에 필요한 모든 것을 가질 때에 평온에 도달할 것이라고 믿지요. 하지만 욕구는 또 다른 욕구를 불러올 뿐입니다.

강한 자아만이 단념할 수 있습니다. 강한 자아는 자숙하며 자신을 강하게 채찍질합니다. 모든 것을 단념할 수 있을 때 자신의 정체성을 찾을 수 있습니다. 당신은 수많은 것들을 필요로 하지 않는 것을 자랑스러워하십시오. 당신은 욕구를 만족시키는 수많은 것 사이에 존재하지 않습니다. 당신이 마음속에 존재할수록 더욱 평온해질 것입니다.

 

-성자 안젤름 그륀의 마음 순례기 "머물지 말고 흘러라" 中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