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 진 자리/ 이승엽
꽃 진 자리/ 이승엽
아내가 출산을 했다.
떨어져 나간 아픈 흉터가 붉게 물들어 있다
바람이 심하게 불어 중심을 잃어버린 몸이 하늘하늘
그러나 아내는 아프지 않다고 했다
낮에는 볕, 밤에는 별과 달이 따뜻한 어머니 품 같다고
산후조리 이만큼 받으면 되지 않느냐고
아내는 거듭 괜찮다, 괜찮다고 했다
아내의 몸에 별꽃이 피었다고 믿고 싶은 것이다
말해주고 싶은 것이다
얼마나 많이 다녀갔을까
아내는 건강한 사내아이의 울음처럼
봄바람 아지랑이 물결 따라
지금 울고 있다
- 시하늘 2008년 여름호 -
시인의 경험 밖 풍경인데도 참 천연덕스럽다. 경험의 테두리 안에서 사유되진 않았지만 심한 상상력이 ‘아내’의 울음을 건져내고 있다. 시의 제목을 ‘꽃이 진 자리’라고 해두지 않았다면 어디 해산한 아낙의 자리를 꽃이 진 자리의 그것인줄 알았으랴.
꽃은 식물에게 있어 생식기란 것은 대체로 아는 사실이다. 그렇다면 그 생식기가 시들어 떨어져나간 자리에 아내의 해산을 올려놓은 설정은 어찌 좀 무리가 있는 듯싶다. 하지만 서정 짙은 상상이 퍼 올린 온기로 꽃 진 자리가 참 따뜻하게 느껴진다.
혼인의 경험이 없는 노총각 시인이 아내가 있을 리 없고, 따라서 딸린 아이가 있을 턱도 없는데 다리 한 번 후들거리지 않고 저토록 태연하게 출산한 아내를 가공하여 위무까지 할 수 있다니 놀랍기도 하여라. 어쩌면 시인은 그만큼 간절히 아내를 원하고 아이를 생산해낼 원대한 꿈을 꾸고 있다는 반증일 런지 모르겠다.
아마 모르긴 해도 실제로 아내가 생기고, 그 아내가 출산을 앞두기라도 한다면 시인의 재롱과 헌신은 볼만하리라. 그동안 시를 핑계로 길에다 투자한 시간과 수고들로 대신 얻은 꽃잎 풍의 서정들이 그녀를 위해 모두 바쳐질 게 뻔하다. 출산한 아내는 그 덕에 ‘거듭 괜찮다, 괜찮다고’할 것이며, 그는 ‘아내의 몸에 별꽃이 피었다고’ 믿어 의심치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