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순진의 맛있는 시읽기
매미소리/ 임영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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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 5. 19. 15:43
감나무 가지 매미가 악쓰면
벚나무 그늘 매미도 악쓴다.
그 무슨 열 받을 일이 많은지
낮에도 울고 밤에도 운다.
조용히들 내 소리나 들어라
매음매음… 씨이이… 십팔십팔
저 데뷔작 한 편이 대표작일까
경으로 읽자니 날라리로 읽히고
노래로 음역하면 상스럽게 들린다.
- 임영조 시전집『그대에게 가는 길』
파람새는 수컷이 암컷에게 구애를 할 때 가장 아름다운 소리를 낸다고 한다. 암컷은 수컷의 가창력도 살피지만 무엇보다 레퍼토리의 다양성에 더 점수를 준다. “호오, 호케꼬, 케꼬” 노래하며 간간히 바이브레이션을 넣기도 한다. 사랑의 고행은 매미도 마찬가지다. ‘여름이 뜨거워서 매미가 우는 것이 아니라 매미가 울어서 여름이 뜨거운 것’이라며 안도현 시인이 ‘사랑’이란 시에서 말했듯 막바지 여름 더위와 함께 매미 울음이 한껏 물이 올랐다. 밤낮없이 줄기차다.
오랜 땅속 굼벵이 생활 끝에 지상에서의 한 달 남짓한 삶이니 암놈을 부르는 러브콜이 저토록 타는 목마름일 수밖에. 그래서 열 받을 일이 많아서가 아니라 스스로 열을 낸다고 해야 옳겠다. 만약 정말로 열 받은 매미가 있어 ‘씨이이...씹팔씹팔’ 한다면 아마도 구애 작업이 신통찮아서일 게다. 마치 데뷔작 한 편 달랑 대표작으로 내놓고 내내 우려먹는 시인처럼. 소품종 소량 생산으로 오랫동안 심각하게 남은 시인처럼. 같은 레퍼토리의 매미소리가 귀에서 공명하듯 세상천지 널려진 수많은 시들이 한 통속으로 귀에서 맴맴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