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 스쳐보낸 뒤에야 사랑은 / 복효근
다 스쳐보낸 뒤에야 사랑은 / 복효근
세상 믿을 놈 하나 없다더니
산길에선 정말 믿을 사람 하나 없다
정상이 어디냐 물으면
열이면 열
조그만 가면 된단다
안녕하세요 수인사하지만
이 험한 산길에서 나는 안녕하지 못하다
반갑다 말하면서 이내 스쳐가버리는
산길에선 믿을 사람 없다
징검다리 징검징검 건너뛰어
냇물 건너듯이
이 사람도 아니다 저 사람도
아니다 못 믿겠다 이 사람
저 사람 건중건중 한 나절 건너뛰다보니 산마루 다 왔다
그렇구나, 징검다리 없이
어찌 냇물을 건널 수 있었을까
아, 돌아가 껴안아주고 싶은,
다 멀어져버린 다음에야 그리움으로 남는
다 스쳐보낸 뒤에야 사랑으로 남는
그 사람 또 그 사람......
그들이 내가 도달할 정상이었구나
믿을 놈 하나 없다더니
이 산길에 나 하나를 못 믿겠구나
- 시집 ‘목련꽃 브라자’중에서 -
산 오르는 길에 쿵쿵 풀쩍풀쩍 사뿐사뿐 뛰며 내려오는 사람에게 묻는다. 얼마나 남았냐고, 정상까지 가려면 몇 분이나 더 가야하냐고. 뺑이 치는 졸병이 제대를 앞두고 개구리복으로 갈아입은 고참에게 묻는 것처럼 묻는다. 그러나 예비군모 삐딱하게 쓴 채 '삐약삐약 햇병아리 주제에' 모질게 겁주는 선배군인처럼 말하는 선배등산인은 없다. '국방부 시계 초침에게나 물어봐라' 까칠하게 답하는 사람도 없다.
'조금만 가면 됩니다. '이제 다 왔어요' '힘내세요' 금자씨 보다 더 친절하다. 그 친절이 뭐가 어때서 시인은 '믿을 사람 없다고' 삐쳤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곧 깨닫는다. '징검다리 없이 어찌 냇물을 건널 수 있었을까' 그 사람들 다 돌아가 껴안아주고 싶은 '다 멀어져버린 다음에야 그리움으로 남는 다 스쳐 보낸 뒤에야 사랑으로 남는 그 사람 또 그 사람......' 한 해가 접혀져갈 무렵 그들이 바로 징검다리였으며 도달해야할 정상들이었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