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2 2018. 5. 12. 10:55




열애 / 이수익

 

때로 사랑은 흘낏

곁눈질도 하고 싶지.

남몰래 외도(外道)도 즐기고 싶지.

어찌 그리 평생 붙박이 사랑으로

살아갈 수 있나.


마주 서 있음만으로도

그윽이 바라보는 눈길만으로도

저리 마음 들뜨고 온몸 달아올라

절로 열매 맺는

나무여, 나무여, 은행나무여.


가을부터 내년 봄 올 때까지

추운 겨울 내내

서로 눈 감고 돌아서 있을 동안

보고픈 마음일랑 어찌 하느냐고

네 노란 연애편지 같은 잎사귀들만

마구 뿌려대는

아, 지금은 가을이다. 그래, 네 눈물이다.


- 시집 『꽃나무 아래의 키스』중에서 -

 

 

 평생을 붙박이 사랑만으로 살아갈 수 있을까? 마주 서서 그윽하게 바라보는 눈길만으로도 절로 열매 맺는 은행나무 같은 사랑이 가능하다면야 '나는 느낀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는 카사노바식 둘러대기 아니고도 통념의 속박으로부터 자유로운 사랑을 구가할 수 있겠다.

 

 오래전 ‘제인 폰다’ 주연의 ‘바바렐라’라는 SF영화가 있었다. 섹스의 방식도 진화를 거듭하여 마주보고 두 손바닥을 대고 있는 것만으로 정신적, 육체적 합일감에 이르는 미래형 섹스를 영화에서 선보였다. 41세기 지구엔 더 이상 삽입 섹스는 없으며, 오로지 감정의 일치만으로 사랑을 나눌 수 있고 서로 주파수를 맞춘 채 손을 맞대고 있으면 사랑은 완성된다.

 

 나이 들수록 그런 사랑이 더 필요할지 모르겠다. 꼭 전통적 방식의 사랑에 몸이 따라주지 않아서 라기보다는 ‘그윽이 바라보는 눈길’같은 감정의 호사에 더 목이 말라서다. 이제 곧 노란 연애편지 같은 은행잎사귀 직설법 추파처럼 마구 뿌려댈 텐데 그 짙은 가을날들 어떻게 다 흔들리고 추슬러야할 지 걱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