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마동 성당 주보 읽기/2018년 주보

부활 제3주일 2018년 4월 15일 (나해)

모든 2 2018. 4. 15. 22:30

  

진산 성지

한국 천주교회 최초로 피의 증거자가 태어난 계기가 된 진산사건이 일어난 곳으로,윤지충(바오로),권상연(야고보) 두 순교자의 고귀한 정신을 기억하기 위한 곳이다. 문의: (041)752-0249 사무실

 

  루카 복음 24,35-48

 

  <성경에 기록된 대로,그리스도는 고난을 겪고 사흘 만에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다시 살아나야 한다.>

 

  그 무렵 예수님의 제자들은 길에서 겪은 일과 빵을 떼실 때에 그분을 알아보게 된 일을 이야기해 주었다.

  그들이 이러한 이야기를 하고 있을 때 예수님께서 그들 가운데에 서시어,"평화가 너희와 함께!"하고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왜 놀라느냐? 어찌하여 너희 마음에 여러 가지 의혹이 이느냐?

  내 손과 내 발을 보아라. 바로 나다. 나를 만져 보아라. 유령은 살과 뼈가 없지만,나는 너희도 보다시피 살과 뼈가 있다." 이렇게 말씀하시고 나서 그들에게 손과 발을 보여 주셨다.

  그들은 너무 기쁜 나머지 아직도 믿지 못하고 놀라워하는데,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여기에 먹을 것이 좀 있느냐?"하고 물으셨다. 그들이 구운 물고기 한 토막을 드리자,예수님께서는 그것을 받아 그들 앞에서 잡수셨다.

  그리고 그들에게 이르셨다. "내가 전에 너희와 함께 있을 때에 말한 것처럼,나에 관하여 모세의 율법과 예언서와 시편에 기록된 모든 것이 다 이루어져야 한다." 그때에 예수님께서는 그들의 마음을 여시어 성경을 깨닫게 해 주셨다.

  이어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성경에 기록된 대로,그리스도는 고난을 겪고 사흘 만에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다시 살아나야 한다. 그리고 예루살렘에서부터 시작하여,죄의 용서를 위한 회개가 그의 이름으로 모든 민족들에게 선포되어야 한다. 너희는 이 일의 증인이다."

 

 

  <말씀의 향기>

 

  평화가 너희와 함께  -박상균 세례자요한 입장 주임

 

  예수님의 기쁜 부활을 맞이한 지도 어느덧 3주일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제자들은 여전히 불안한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엠마오의 제자들의 말을 선뜻 믿지 못하는 모습입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불안해하는 제자들 앞에 나타나시어 인사를 권합니다. "평화가 너희와 함께"라고 말씀하시는 예수님은 상대적으로 평화롭고 온화한 모습을 보이시는 동시에 제자들의 불안을 잠재우는 듯한 모습을 보이십니다. 일반적인 심성이라면 자기를 배신한 제자들에게 서운함이 많으셨을 터인데도 오히려 친절과 배려로 응대하시는 모습입니다. 생각해 보면 제자들의 불안은 믿지 못하는 것에 그 원인이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아직도 주님의 말씀과 부활에 대한 신앙이 단단하지 못함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면서 예수님께서는 제자들 앞에서 당신의 증거를 보여 주십니다.

  어느날 TV를 보다가 믿음에 대한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믿음이란 무엇인가?라는 물음에 어떤 사람이 이렇게 말했습니다. "믿음이란 믿지 못할 것을 믿는 것이 믿음이다." 좀 어려운 말이 될 지 모르지만 저에게 믿음이란 존재하는 것에 대한 깊은 이해와 성찰을 통해서 존재하고 있는 것을 믿는 것이다라고 정의 내리고 싶습니다. 사람의 습성 중에서 단점 하나는 보이는 것만 믿으려는 성향이 있다는 것입니다. 자본주의에서 나타나는 양상 중의 하나라 여겨집니다. 쉽게 생각하면 비행기를 보지 못한 오지의 사람에게 비행기에 대한 이야기를 해 준다면 어떨까요? 어떤 사람은 믿고 어떤 사람은 믿지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비행기에 대해 이야기하는 사람은 비행기를 직접 타고온 사람인 것은 부정할 수 없습니다. 주님의 부활 신앙은 오랜 교회의 가르침입니다. 교회는 직접 예수님의 부활을 체험하였고 그 증거로 사도들의 가르침에 믿음을 두는 것입니다. 성경 전반을 보아도 하느님의 사랑은 인간의 이성으로 헤아릴 수 없는 극치라고 생각합니다. 그 사랑의 극치를 보여준 것이 예수님의 부활 사건인 것입니다. 인간은 희망하는 존재입니다. 유한한 삶 속에서도 영적인 것을 추구하는 가장 고귀한 가치를 지닌 존재입니다. 현실의 불안에 떨고 있다면 우리는 제자들의 모습에 가까울 것입니다. 이제 불안을 떨쳐 버리고 부활의 기쁨 속에서 앞으로 나갑시다. 언제나 그랬듯이 주님은 우리를 기다리시고 품에 안으려는 분이심을 잊지 맙시다.

  '지금은 긴 말을 하고 싶지 않아요. 당신을 만나 되살아난 목숨의 향기 캄캄한 가슴 속엔 당신이 떨어뜨린 별 하나가 숨어 살아요. 당신의 부재(不在)조차 절망이 될 수 없는 나의 믿음을 승리의 향기로 피워 올리면 흰 옷 입은 천사의 나팔 소리 나는 오늘도 부활하는 꽃이에요."-이해인 수녀의 '백합의 말'

 

 

  via의 시선(잠시 멈춰서)  -임상교 대건안드레아 신부님의 한주간의 글-

 

  추기는 시간이 왔습니다. 추기는 시간,추어올리며 야비다리치는 사람들을 봅니다. 특정한 때가 되면 어김없이 나타나는 사람들과 그들이 간살거리며 내뱉는 소리에 박수와 환호로 응답하는 사람들, 판단을 보류합니다.

 

  옥수수를 심었습니다. 비가 내릴 것이라는 예보를 듣고 서둘러 나갔습니다. 조금 걷어낸 흙 사이에 씨앗을 내려놓고 부드럽게 덮어줍니다. 잘 자라겠지 아니 잘 자랐으면 좋겠다는 희망을 전하며,생명을 잉태하고 출산하는 땅의 신비를 묵상합니다.

 

  하늘을 봅니다. 별이 보입니다. 과거로부터 오는 빛입니다. 과거로부터 오는 빛을 보고 감탄하며,가슴에 별을 새깁니다. 그리고 생각합니다. 현재는 "있는" 것일까? 생각하고 있는 이 순간 지나가 버리는 지금,그리고 지금이라는 시간 속에서 경험한 나를 나라고 인지하는 나.

 

  생명은 기억과 함께 삽니다. 때문에 기대하는 내일의 실현은 '기억의 현재화'를 통해서만 가능합니다. 즉 과거의 기억을 지금이라는 현재에 되살리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그리스도인은 지금 여기에서 기억을 실현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리스도인은 미사 중에 성찬례를 통해서 지금 여기에서 기억을 실현합니다. 살아있는 기억,그래서 그 기억은 현재를 살고 있는 나의 신원을 잊지 않게 하고,추구해야 하는 가치가 무엇인지 기억하게 합니다.

 

  우리가 목격하는 모든 열매는 땅의 기억을 품고 있습니다. 땅이 경험하는 현재가 열매로 맺어집니다. 열매는 땅의 아픔과 상처를 그래도 자신의 몸에 새기고 있습니다. 그래서 열매를 먹는 행위는 그 열매의 새겨진 땅의 기억과 열매를 맺게 한 땅의 상태를 먹는 것입니다.

 

  건강한 내일을 기대하며 삽니다. 그런데 우리는 건강한 내일 혹은 행복한 오늘을 기대하면서 과거로부터 오는 빛을 묵상하지 않습니다. 열매를 맺고자 하는 땅의 상태를 점검하고 성찰해야만 기대하는 오늘과 내일이 주어집니다.

 

  추기는 시간 속에서 무엇을 해야 할까. 잠시 멈춰서,과거로부터 오는 빛을 바라보는 오늘이 되기를 희망합니다. 오늘 행복하소서.

 

  

의외로 하느님은...

 

 

  야구선수가 야구를 잘하거나 배우가 연기를 잘하는 건,칭찬받을 수 있는 일이기는 해도 결코 놀랄 일은 아닙니다. 어쩌면 너무도 당연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야구장에서 청소를 하던 청년이 우연히 주운 공을 던졌는데, 그 공의 위력과 속도가 엄청나다면 우리는 그 이례적인 경우에 깜짝 놀라게 됩니다.

 

  극장 매표소에서 표를 받던 여직원이 배우가 놓고간 대본을 배우보다 훨씬 더 멋지게 읽는다면,우리는 그 의외적인 상황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게 됩니다.

 

  이런 의외의 능력 보유자들은 현실이 아니라 주로 영화 속에 살고 있습니다. 영화 주인공들은 대부분 그들의 의외의 능력으로 우리에게 극적인 감동을  주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정말 그런 의외의 재능들이 영화 주인공들만의 몫일까요? 작가의 상상력 안에서만 가능한 비현실적인 꿈에 지나지 않는 것일까요?

 

  실제로 평소 수줍음 많던 사람이 무대에만 서면 열정 넘치는 배우가 되고,격한 스포츠 경기의 주인공이 퀄트를 배워 전시회를 열고,요리사가 히말라야 등정을 하는 산악인이 된 경우를 보면 꼭 그렇지만은 아닌가 봅니다.

 

  그런 분들을 보면,하느님은 우리에게 의외로 많은 달란트를 주셨는데 우리가 의외로 한 가지 달란트에만 매달려 살아가고 있는 건 아닌지. 오직 한 가지 달란트에만 집중하는 것이 행복의 기준이라고 생각하며 살아온 건 아니었는지 뒤돌아보게 됩니다.

 

  이제라고 그동안 제 안에 숨겨져 있던 하느님이 주신 의외의 선물 보따리들을 하나씩 하나씩 풀어 봐야겠습다. 누가 압니까? 혹시 제게 컬링 선수가 될 재능이 숨겨져 있을지...

 

 

 

"나를

만져 보아라"

 

오늘도

주님은

내 안에 계십니다.